자신의 신분에 맞는 로그인화면을 선택하세요.
닫기

사학과

한국사학, 동양사학, 서양사학에 대한 균형잡힌 역사인식을 고취하고 폭 넓은 역사학적 안목을 가진 인재를 양성합니다.

1971~1980

세대 교체기(1971~1980)

1970년대는 군사독재정권이 개발독재의 성과로 자신감을 얻은 시기였다.60년대 4.19 혁명 이후 고양된 민족주의적 각성을 독재정권이 지배이데올로기로 활용하는 과정에서, 역사교육의 기본방향에 큰 변화가 일어났고, 이것이 대학의 교양교육에도 반영되었다. 즉, 한국사의 교육과 연구에 국가적 관심이 크게 높아져 이에 대한 지원을 정책적으로 실시하였다. 한국사가 교양필수과목으로 확정되면서 교양교육에서 종래 문화사의 위치를 대신하게 되자 한국사 분야의 교수진용이 대폭 강화되었다. 입학정원도 1972년20명,1977년30명, 1978년3월40명으로 대폭 늘어났다.

당시 한국사교육이 강화는 물론 시대적 요청이었고 뒤늦은 지각이었지만, 대학교육에서 균형 잡힌 역사의식의 함양을 방해하기도 하였다. 또 한 이 시기 본 학과에서도 앞서 언급하였듯이 중요한 몇 가지 변화가 일어났다. 첫째,이 기간에 세대교체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들 수 있다. 본 학과의 창설,육성에 힘써 온 제 1세대 교수들이 퇴직,전출,정년 등으로 모두 떠나고, 50~60년대에 교육을 받은 제 2세대 교수들이 자리를 매웠기 때문이다. 즉 1973년 동양근세사를 전공한 고석림 전강(본 학과 출신)이 1971년 정년 퇴임한 김익호 교수의 후임으로 부임하였다.
그리고 1976년 교양과정부가 해체됨에 따라 문화사 담당인 윤용진 교수와 한국사 담당인 이태진 전강(1873년 부임,서울大)이 학과 소속으로 되고,같은 해 이기동 전강(서울대출신)이 새로 부임하였다. 1977년3월에는 이태진 전강이 서울대 인문대학으로 전출케 되었으므로 그 후임에 경상대학에 있던 문경현 교수(본 학과 출신)가 부임케 되었다. 그리고 김진경 교수가 성균관대학으로 전출(1977년 10월)하자 그 후임으로 1978년 본 학과 출신으로 미국사 전공인 김종길 전강이 부임하였다.

둘째,본 학과의 운영이 민주적,합리적인 방향으로 개선되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종래와는 달리 1972년 이래 김엽 교수, 김진경 교수, 오주환 교수, 운용진 교수 순으로 번갈아 가면서 학과장으로서 학과운영을 맡았다. 이는 제일 선임교수 한 사람이 담당하던 관례를 부정한 것이었다. 한편 특이사항으로 본 학과 교수들이 주축이 되어 대구 사학회를 육성해 왔다는 사실을 손꼽을 수 있다. 대구 사학회를 창설하는데 중추역할을 했던 본 학과 교수들은 초창기로부터 많은 논문들을 기고하는 등 한국 유수의 사학회로 육성하는데 이바지하여 왔다. 이 기간 동안 본 학과의 오주환 교수,한영국 교수, 고석림 교수는 대구사학회의 총무간사 및 연구간사직을 번갈아 역임하면서 학회 운영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1970년대 후반에 들어와 본과 교수의 해외연구가 활발해졌다. 이는 해외 견문을 넓힘으로써 새로운 역사의식을 함양하게 되어 역사교육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계기가 되었다. 김엽 교수는 1977년 하버드-옌칭 재단의 연구비를 지원받아 중화민국(대만) 중앙연구원에서 연구하게 되었고, 오주환 교수는 1978년부터 국비해외파견 교수로 미국의 뉴욕 주립대학(버팔로)에서 연구했다. 문경현 교수 역시 일본국제학술재단의 연구비로 일본의 대표적인 동양학 연구기관인 東洋文庫에서 2년간 연구하였다. 이 밖에도 오주환 교수는 1974년9월부터 1년간 서울大 문리과대학에서 교환교수로 파견(1974.9~1975.2)되었고, 한영국 교수는 1974년 10월 일본 조선학회에서 논문을 발표하였다. 이 시기에는 허진영, 이우영, 나경수, 조향래, 민병휘, 홍순창, 허흥식, 김영호 등의 강사들이 학과 강의를 부분적으로 담당하여 학과 발전에 기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