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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과

한국사학, 동양사학, 서양사학에 대한 균형잡힌 역사인식을 고취하고 폭 넓은 역사학적 안목을 가진 인재를 양성합니다.

1988~현재

질적 팽창기(1988~현재)

1980년 후반은 1987년 4월 민주화 일정의 조기 추진을 요구한 교수서명운동에 의해 물꼬가트인 각계의 민주화 요구가 결실을 맺어 졸업 정원제가 폐지되고 정원도 축소되어 대학이 외부적 억압에서 벗어나 자율성을 회복한 시기이다. 매년 정원인 80명의 30%를 추가해서 104명의 신입생을 뽑았던 본 학과도 입학정원이 1987년 72명, 1988년 60명, 1989년 50명으로 축소됨으로써 교육이 정상화되었다. 그러나 저하된 학력 수준은 이후 회복되지 못하여 지방 국립대학의 위상이 하락하는 큰 문제를 남겼다.

1987년 4월 민주화 요구를 분수령으로 시작되는 이 시기의 특징은 사회 민주화의 큰 흐름을 대학에서 받아들여 대학 민주화로 정착시킨 것이다. 본 학과에서도 역사 의식에 투철한 일부 중견, 소장 교수가 불이익을 감수하고 교수 서명운동을 주도적으로 감당함으로써 교육 민주화와 사회 민주화에 대한 관심을 표명한 것이 특징이다.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 및 대ㅜ지방사회연구회, 대구사회연구소 등 대외 활동은 물론 경북대학교 교수협의회와 인문대학 교수협의회의 창설에도 본 학과 교수들이 적극 참여했다.

또 사학과 학생들은 1987년 6월 민주화운동이 일어났던 날 학군단을 점거하여 대학의 병영화를 가져온 학생 군사훈련과 강제입영에 저항했다. 대학으로서 이 기간은 전례 없는 변혁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198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대학 민주화 운동이 대학행정의 자율화를 강화하고, 교육과 연구가 정상궤도를 회복하였다. 그러나 1993년 성립한 문민정권이 경쟁논리와 교육수요자 요구에 입각한 교육개혁을 추진함으로써, 대학과 대학교육이 제도적, 질적으로 큰 변화에 직면하였고, 학생운동의 과제가 역시 일부 대학의 내부 문제를 포괄함에 따라 대학이 겪은 내외적 시련이 커지고 있다.